롬 혹은 곰, 정단
그리고 나의 발렌타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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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이라는 '역사학자'를 아시는지. 정수일이라는 멀쩡한 이름 석자와 평생을 통해 일궈낸 학문적 과업에도 불구하고 무하마드 깐수라는 가짜 이름과 간첩이라는 서슬 퍼런 낙인 속에 갇혀 종국에는 사형 선고까지 받아야 했던 비극적 지식인을.
작년 가을 학기, 정수일 선생님으로부터 '동서문화교류사'라는 수업을 들었다. 부정확한 한국어 발음과 이해하기 좀처럼 쉽지 않은 그만의 개념체계, 쇳소리에 가까운 음성, 교재 강독과 항목 나열식의 강의. 지루하기 그지 없었던 수업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기억이다.
학기 내내, 그는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연구과제들에 대해서는 엄청난 열정을 발산했던 반면, 수강생 대부분의 관심사였던 어쩌면 본인이 더욱 나누고 싶었을지 모를 자신의 과거와 세계관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당시 나는 그를 구속하는 외적 강제를 떠올렸고,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는 남한내 고정 간첩 무하마드 깐수가 아닌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로 지성의 양식을 통해 겨레에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진해 온 '학자 정수일'이 아닌가.
덧>
1. 참고할 만한 글들 (특히, 황석영이 쓴 '내가 만난 깐수'를 읽어보시길.)
2.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옥중편지를 모은 그의 자전적 수기)
3.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에 대한 서평 (이신조의 책과의 밀어, 주간한국. 20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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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의 저자들이 '한국 자유주의의 열가지 표정'이라는 부제로 10인의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인물비평서, 자유라는 화두를 읽었다. 그러나 사실 책의 본내용인 10인의 자유주의자(강준만, 마광수, 복거일, 나혜석, 김수영, 최인훈, 김현, 전혜린, 장선우, 홍신자)들의 면면보다는 김동춘이 쓴 총론(레토릭으로 남은 한국의 자유주의)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를 한국의 사상적 불구성의 역사'로 규정한다. 근현대 한국에서 자유를 외친 사람들의 대다수는 '반공 자유주의자', '민족 허무주의자', '얼치기 근대화론자'로 정리되는 타락한 자유주의이거나 권력이 허용하는 문화적 공간에서 탈정치적 문화운동에 천착했던 문화적 자유주의자였다. 취약한 경제적 기반, 엄혹한 정치적 현실, 봉건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유는 오직 레토릭으로만 남아 정치와 절연된 영역에서 극히 고립된 개인의 정신적 자유나 기회주의자들의 변명으로서만 기능했다는 것이 그의 중심된 논지이다.
그의 안타까운 심정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인의 대다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나 사회에 대한 직접적 대항보다는 수세적으로 문화적 영역이나 일상의 공간에서 '자기'의 고수에 몰두했디.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내외적으로 상당한 고뇌와 고통을 수반해야 했다. 그들의 인생을 절대 폄하할 수 없다. 차라리 어쩌면 개념적 접근이 쉽지 않은 자유 혹은 자유주의라는 언명의 구체적이고도 순수한 형태를 그들의 삶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배신이 수반된다는 현실적 모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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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진로에 대해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이 맘쯤이다. 복학을 앞두고 있었고, 주위의 재촉과 기대 그리고 주변의 분주함 속에서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무엇이 딱히 하고 싶다는 바램보다 무엇도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초라한 자기인식 속에서 막연히 '취업'을 하겠다는 미적지근한 생각을 가지고 복학 후 두 학기를 보냈다.
당신은 차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무뇌아처럼 '돈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할 것'이라는 한심한 대답을 반복하고, 소모적인 영어공부에 대한 냉소와 경멸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며, 기존에 가져왔던 가치와 전망들을 배반할수록 역설적으로 취업에 대한 결심은 더욱 굳어져왔다.
아무리 포장하고 합리화시키려 노력해도 현재 나에게 취업은 밥벌이를 위해 혹은 여유있는 소비생활을 위해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에 노동력을 팔겠다는 결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향을 선회하여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엄두도 용기도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에도 괴로운 건 일말의 여지와 고민조차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오늘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예전 일군의 학생들이 즐겨 인용하던 문장, 68혁명 시기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외쳤다는 구호가 요즘 문득 생각나곤 한다.
'청년들은 미래에 의해 너무 자주 방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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