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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00:28
[시간이머무는자리]
지난주 내내 미친듯이 영화만 봤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어나마자 컴퓨터를 켜고, 컴퓨터 앞에서 골아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15편 정도의 영화를 본 것 같다. 눈알이 빠질 것 같다라는가 허리가 끊어질 거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들을 절절하게 몸으로 느끼며, 감상이나 향유라는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게걸스런 소비행위를 지속했다.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보고니 무슨 영화를 봤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허망함을 달래며 지난 주를 함께한 몇 편의 영화에 느낌표를 찍어본다.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와 미묘한 감정의 교감만으로도 화려한 액션이나 유려한 스토리 전개 못지 않은 흥분과 감동을 자아낸다. 9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한 두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현실의 그것과 일치한다. 연희동 골방의 내가 클릭 몇 번으로 무심히 뛰어넘은 9년의 시간 동안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그 만큼의 세월을 체현하고 있었다. 지워진 시간동안 우리의 두 주인공 셀린느와 제시는 일상 속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간직했을 터이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헐리우드식 문법으로 전하는 아프리카의 실상. 풍요로운 자원이 갈등과 억압을 초래하는 아프리카의 역설적인 현실에 영화는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다분히 계몽적이고, 상당 부분 따분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풀어내는가'와는 별개로 이야기를 꺼내는 시도 역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크래쉬
현실의 모순은 중층적이다. 이브닝 드레스를 차려입은 부르주아 흑인 여성과 아버지의 병원비를 걱정하는 백인 남성 경찰, 히스패닉 노동자와 아랍계 자영업자. 아시안 이민자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흑인 범죄자, 흑인을 살해하는 휴머니스트 백인.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군상들의 관계를 건조하게 묘사하는 '러브 액추얼리'의 글루미 버전 정도가 될 듯.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백선생과 봉총각. 두 사람의 '개인기'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영화. 애정결핍은 애정과잉의 형태로 드러나는가 보다.
예의없는 것들
신하균표 연기가 절절히 묻어나는 영화. 농아와 킬러는 이제 신하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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